노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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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지도
최병일(63)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한국경제연구원장(2011~14년)과 한국국제경제학회장(2018~19년)을 지낸 중진(重鎭) 학자이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졸업후 1989년 미국 예일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9년) (2014년)를 비롯한 여러 권의 전문서적을 썼다.


중국이 세계적으로 부상한 2010년쯤부터 지금까지 중국 연구·관찰을 하고 있는 최 교수는 ‘실사구시(實事求是) 관점에서 원칙과 가치에 입각한 중국 다루기’를 주창하고 있다. 그가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서울 테헤란로 소재 한국고등교육재단(KFAS) 사무실에서 이달 8일 만났다.

◇‘자본주의’ 대신 ‘사회주의’로 되돌아가는 중국

- 2021년 9월, 지금의 중국은 어떤 나라인가?

“마오쩌둥 이후 처음으로 살아있는 정치 지도자에 대한 개인 숭배운동을 벌이는 나라다. 목표는 내년 가을 시진핑의 중국공산당 총서기 3연임이다. 또 알리바바, 텐센트 등 빅테크(Big Tech)기업과 게임산업, 사교육까지 공산당이 통제 고삐를 조이고 있다. ‘자본주의’ 껍질을 버리고 ‘사회주의’로 본격 회귀하고 있다.”

중국공산당의 혁명 성지인 산시성 연안 홍군 유적지를 2018년 중국 IT 대기업 총수들이 찾았다. 이들의 홍군 복장 차림은 공산주의로 일제히 회귀하는 중국의 단면이다. 왼쪽은 텐센트의 마화텅 회장, 오른쪽 위는 전자상거래업체 징둥닷컴의 류창둥 회장, 오른쪽 아래는 마윈 알리바바 창업주 /조선일보DB
중국공산당의 혁명 성지인 산시성 연안 홍군 유적지를 2018년 중국 IT 대기업 총수들이 찾았다. 이들의 홍군 복장 차림은 공산주의로 일제히 회귀하는 중국의 단면이다.

-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디지털 대변환 시대에 중국경제 견인의 주체는 ‘빅테크’로 대표되는 민간기업들이다. 민간 대기업들이 공산당의 고리타분한 경제 운영틀에 불만을 품고 당(黨)의 노선과 다른 목소리를 내자, 공산당이 손보기에 나섰다. 이제는 공산당이 경제주도권을 쥐고, 경제판을 새로 만드는 시대이다. 민간기업들은 당의 눈밖에 나지 않으려 노심초사하고 있다.”

◇“공산당 ‘자비’ 여부로 기업 성패 달라져”

- 올해 7월1일 중국공산당은 창당 100주년을 맞았다.

“그를 계기로 공산당이 중국경제 전면에 등장해 모든 기업들의 생살여탈권(生殺與奪權)이 자기 손에 있음을 세계에 보여주고 있다. 중국 시장에서 성패는 이제 ‘경쟁력’보다 ‘당의 자비(慈悲)’ 여부가 결정한다. 한국을 포함한 외국기업도 예외일 수 없다. 경제 이익을 위해 정치적 가치는 잠시 눈감아도 되는 시대는 끝났다.”


“2008년의 첫번째 베이징올림픽이 중국의 경제 대국 부상을 세계에 과시하는 전시장이었다면, 두 번째 베이징올림픽은 중국 체제의 우수성을 과시하는 선전장(宣傳場)이 될 것이다. 중국은 디지털 위안화, 안면(顔面)인식 기술 등을 장착한 ‘디지털 레닌주의’ 체제를 전 세계에 자랑할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 순진하게 들러리서거나 비위를 맞춰서는 안 된다고 본다.”

◇“허술한 中 경제...‘선전 공세’로 위장해”
- 미·중 전략 경쟁이 격화되는데도, 중국 경제는 나름 성장하고 있다.

“시장구매력 기준으로 중국은 2014년에 미국을 추월한 걸로 파악된다. 미국이 매년 2.0%, 중국은 4.5%씩 경제성장한다고 가정할 경우, 20년 후에는 중국이 미국의 국내총생산(GDP)까지 넘어설 전망이다. 외관상으로만 본다면, ‘중국의 시대’가 열리고, 미국은 갈수록 ‘종이 호랑이’ 같다는 느낌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공산당 특유의 스토리텔링에 의한 선전전(propaganda war)이다. 미국의 강도 높은 대(對)중국 압박으로 중국 경제는 예전 같은 활력을 지속하기 힘들 것이다.”

- 어떤 점에서 중국 경제가 어려워진다는 건가?

“올해 초 집권한 조 바이든 민주당 정부는 첨단기술 통제와 연구교류 제한, 중국 기술기업 규제 등으로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 또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 연합하여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 퇴출을 추진하고 있다. 여기에다 공산당이 민영 기업을 옥죄는 국내 경제 정책도 중국 경제에 악재가 될 것이다. 성장률 하락은 물론 중앙과 지방정부에 누적된 부채와 부실이 터질 수 있다.”


◇“공동 부유론 추진하다가 中 경제 더 나빠질 것”

최 교수는 그러면서 중국이 부딪칠 세가지 위기를 적시했다.

“첫 번째는 ‘중진국 함정’이다. 특히 중국의 빈부 격차는 프랑스 혁명 발발 전야(前夜) 보다 높을 정도로 위험 수위를 넘었다. 이 때문에 시진핑 정권이 ‘공동(共同) 부유론’을 내걸었지만 오히려 경제 활력이 떨어지고 기업 부실, 일자리 감소가 벌어질 것이다.

두 번째는 ‘투키디데스 함정(Thucydides Trap)’이다. 시진핑 정권이 내건 ‘분발유위(奮發有爲·할 게 있으면 적극적으로 이룬다)’라는 공세적인 외교 전략은 국제사회에서 대결과 충돌로 이어져 경제에 악영향을 낳을 것이다.

마지막은 ‘킨들버거 함정(Kindleberger Trap)’이다. 찰스 킨들버거 전 MIT 교수가 “기존 패권국 영국의 자리를 차지한 미국이 신흥 리더 역할을 못해 1933년 대공황이 발생했다”는 논리처럼, 중국의 부상으로 정치·경제적 불안정성이 높아지고 있다.”


- 미·중 전략 경쟁 이전과 이후는 무엇이 다른가?

“과거에는 별개로 움직이던 안보와 경제가 지금은 일체화됐다. 안보와 경제의 융합(security-trade nexus)이다. 일례로 중국공산당의 신장위구르 지역민 인권 탄압 규탄에 동조한 H&M과 나이키를 상대로 중국 당국과 민간이 보복과 불매 운동을 벌였다. 정치(인권)와 경제가 동조(同調) 현상을 보이고 있다.”

스웨덴에 본사를 둔 세계 2위 의류업체 H&M가 2020년 홈페이지에 올린 입장문. H&M 측은 "그간 국제 비영리단체가 인증한 중국 신장위구르 지역 농장으로 면화를 공급받았지만 비영리기관이 신장에서 신뢰도 있는 실사를 할 수 없다고 밝혀 신장산 면화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스웨덴에 본사를 둔 세계 2위 의류업체 H&M가 2020년 홈페이지에 올린 입장문. H&M 측은 "그간 국제 비영리단체가 인증한 중국 신장위구르 지역 농장으로 면화를 공급받았지만 비영리기관이 신장에서 신뢰도 있는 실사를 할 수 없다고 밝혀 신장산 면화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최 교수는 이어서 말했다.

“샤오캉(小康·절대 빈곤 해결로 의식주 걱정이 없는 상태) 사회에 도달한 중국은 ‘중국몽’ 즉 세계 1위 패권국 야심을 드러내고 있다. 예전처럼 순진한 시각으로 중국을 대해서는 안 된다. 국가적 좌표를 설정하고 중국을 상대해야 한다. 특히 정부가 당당하게 원칙을 갖고 중국의 잘못된 행동과 행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바로잡아야 한다. 국제기구는 물론 민주주의 국가동맹과도 연대해야 한다.”

올 1월 집권한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국제사회에서 민주주의 동맹으로 중국 압박을 꾀하고 있다. 올해 6월 영국에서 열린 G7 정상회의 환영식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게티이미지 코리아
올 1월 집권한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국제사회에서 민주주의 동맹으로 중국 압박을 꾀하고 있다.

◇“핵심 역량 키워 강해지는 게 한국의 생존법”

- 미·중 전략 경쟁 시대에 우리는 누구 편에 서야 하나?

“양국의 경쟁은 향후 최소 20년간, 즉 21세기 전반기 내내 계속될 것이다. 따라서 어느 한 나라를 선택하는 문제로만 보면 안된다. 관건은 우리의 핵심역량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이다. 미·중 경쟁의 본질이 기술패권 다툼인 만큼, 반도체와 배터리 등 핵심소재를 가진 한국은 중국의 거센 추격을 뿌리칠 수 있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 정부와 민간이 함께 만들어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추진해야 한다. 스스로 힘을 키워 강해지는 게 유일한 방법이다.”

- 우리 정부와 기업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본격적인 중국 견제에 나선 미국은 예전처럼 미국 시장과 기술, 대학, 연구기관에 대한 중국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이런 마당에 한국은 정치와 경제 연계라는 큰 구도 속에서 기존의 가정과 행동방식을 바꿔야 한다. 과거에는 상호보완적이던 한·중 경제관계가 지금은 경쟁 중심으로 달라졌음을 모든 주체가 확실히 인식하는 게 출발점이다.”

최 교수는 “특히 안보와 연계된 첨단 기술 분야는 국가 전략 차원에서 움직여야 한다”며 “공통된 이해와 가치관을 공유하지 않는 나라와의 협력 및 투자는 스스로 위기를 자초하는 악수(惡手)”라고 했다.


◇“전략적 모호성 유지 때엔 中이 더 경멸할 것”
- 하지만 국내 일각에선 미·중 경쟁 속에 ‘전략적 모호성’을 견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생존과 번영이라는 가치 가운데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생존이 우선일 것이다. 당장의 경제적 이익만 챙기려고 중국을 떠받들고 저자세로 일관한다면, ‘한국은 돈만 알고 주권국가로서 원칙과 자존심은 없는 나라’로 각인될 것이다. 그러면 중국으로부터도 더 큰 경멸과 모욕을 받게 될 것이다.”

최 교수는 “한국의 리더들은 자유·인권에 기반하고 창의와 법치가 보장된 민주시민사회라는 원칙과 가치에 충실해야 한다”며 “중국 비위를 맞추려고 온갖 멸시에도 침묵하다가는, 한·중 충돌이 벌어져 되돌이킬 수 없는 사태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 중국공산당발(發) ‘정치 위기’로 인한 중국 비즈니스 위험이 최근 커지고 있다.

“그렇다. 지금 중국공산당이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국적을 묻지 않고 공장 가동을 중단하거나 천문학적 세금과 징벌금을 매겨 회사를 망하게 할 수 있다. 중국에서 ‘정치 위기’는 이제 변수가 아닌 상수(常數)이다. 한국 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중국에 투자를 많이 할수록, 중국공산당의 인질(人質)이 될 위험이 매우 높다.”

최 교수는 “이런 판단은 사드 보복 이후 롯데의 어려움이나 최근 삼성중공업의 저장성 닝보 조선소 철수 결정에 반발하는 중국 노동자 수 천명의 시위에서 확인되고 있다”고 말했다.


◇“中, 더이상 ‘비즈니스 기회의 땅’ 아니다”

- 일부 전문가들은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에 투자와 협력을 더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중국 보다 확실한 기술 우위를 가졌던 전기차 배터리 기업 업종을 보자. LG, SK, 삼성 등이 모두 중국 현지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짓고 야심찬 투자를 했지만, 중국은 자국 회사에만 보조금을 지급해 한국 기업들은 엄청난 경제적 손실과 속앓이를 했다. 중국보다 우월한 기술을 갖고 있더라도 중국에 진출하는 것은, 화약(火藥)을 등에 이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꼴이다. 다른 업종은 더 말할 필요조차 없다.”

최 교수는 이렇게 밝혔다.

“한국 기업인들은 중국을 더 이상 ‘비즈니스 기회의 땅’이라고 착각해서는 안된다. 중국에 대해 단단한 각오가 없이 임한다면 엄청난 충격과 쓴 맛을 맛볼 것이다. 중국 진출투자라는 한 가지 전략 외에 ‘차이나 플러스’, ‘차이나 마이너스’, ‘차이나 제로’ 같은 다양한 전략 카드로 유연하게 대응해야 한다.”


◇“미·중 경쟁은 한국 경제에 ‘보약’ 된다”

- 미·중 전략 경쟁은 한국 경제에 ‘독(毒)’인가, ‘약(藥)’인가?

“‘약’이라고 본다. 중국과의 기술 격차가 좁혀지고 경쟁 구도가 된 상황에서, 미·중 경쟁 틈을 잘 활용해 중국과의 기술 격차를 벌리고, 안정적이고 예측가능한 서방 경제권에서 경제력·기술력을 더 키우고 고도화하면 ‘보약’이 될 수 있다.”

- 중국은 틈만 나면 한국을 상대로 위협적인 언사와 거만한 행동을 일삼고 있다.

“우리나라가 중국의 도발에 소극적이고 미온적으로 미적거릴수록, 중국은 한국을 더 얕본다. 중국은 세(勢)가 불리해도 상상을 초월하는 방식으로 맞대응한다. 그들은 허장성세와 공포로 상대를 제압하는데 이골이 나있다. 기만 전술과 선전 공세 뒤편에 있는 중국의 본질을 꿰뚫고 냉정해야 한다.”


◇“이런 상태 계속되면, 후손들 ‘속국 백성’될 것”

- 지금 여·야의 대통령 예비 후보들에게 조언한다면?

“중국은 14억 인구 가운데 9000만명이 공산당 당원인, 세계 최대 공산당 국가이다. 이런 중국 체제의 속성을 제대로 알고 원칙과 가치에 입각해 당당한 관계를 설정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 후손들은 중국의 속국(屬國) 백성이 돼 끌려 다니며 표류하는 운명을 맞게 될 것이다. 지금이 한·중 관계를 바로잡을 적기(適期)이다.”

- 한국과 중국 청년 세대의 상호 인식은 어떤가?

“한국고등교육재단(KFAS)의 한·중 20~30대 리더십 프로그램에 10년 전부터 참가하고 있는데, 매년 중국 청년들의 국수주의(國粹主義)가 강해짐을 피부로 느낀다. 이들은 공산당 체제와 중국 제품, 기술, 문화를 격렬하게 옹호·대변할 뿐, 서방이나 한국 문화는 존중과 수용을 거부한다. 순진하면서도 한국 역사에 무지한 한국 젊은이들에게는 반중(反中) 수준을 넘어 중국을 싫어하는 혐중(嫌中) 정서가 팽배해 있다.”

최 교수는 “중국의 민족주의와 한국의 혐중 정서가 증폭해 충돌한다면, 미래의 한·중 관계는 매우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 https://www.chosun.com/economy/economy_general/2021/09/17/4GAEHBL6DZE55KH3RBCS2YQZX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