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지도
[사설] 尹 결단과 安 용단으로 단일화, 정권 교체 여론 따른 순리다
https://www.chosun.com/opinion/editorial/2022/03/04/LHLS2XZGKBHKTCQSDKWGQJXD4I/

입력 2022.03.04 03:26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사전 투표 시작을 하루 앞둔 3일 단일화에 합의했다. 윤 후보가 지난달 27일 “안 후보에게 결렬 통보를 받았다”고 공개하면서 사실상 단일화는 성사 가능성이 희박해 보였는데 반전이 일어난 것이다. 두 후보는 2일 마지막 TV 토론을 마친 후 심야 회동을 해 협상을 타결 지었다. 두 후보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더 좋은 대한민국을 만드는 시작으로서의 정권 교체, 즉 더 좋은 정권 교체를 위해 뜻을 모으기로 했다”고 했다. “함께 정권을 준비하고 정부를 구성하며 선거 후 즉시 합당도 추진하겠다”고 했다.

윤, 안 두 후보는 모두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의 실정을 바로잡기 위한 정권 교체를 대선 출마의 가장 큰 명분으로 삼았다. 정책도 핵심 분야에서 공통점이 많다. 탈원전을 비롯해 마차가 말을 끈다는 지적을 받아온 소득 주도 성장, 규제 일변도로 집값 폭등을 가져온 부동산 정책 등 문 정부의 실정을 제자리로 돌려 놓겠다는 입장이다. 북한 핵 문제에 대한 단호한 대처, 한미 동맹 다시 강화, 중국에 군사 주권을 내준 ‘3불 정책’ 폐기 등 외교·안보 분야에 대한 시각도 거의 일치했다. 수시 모집을 폐지하거나 줄이고 정시 모집을 확대해 ‘공정 입시’를 실현하겠다는 교육 공약도 비슷했다. 디지털 플랫폼 정부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응한 공약도 큰 틀에서 차이가 없었다.

이번 대선에서 가장 확고한 흐름은 정권 교체를 바라는 여론이 언제나 50%를 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상 대선 운동이 시작된 작년 하반기 이후 지금까지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정권 교체론은 정권 유지론 보다 10%포인트 이상 앞섰다. 후보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유권자들의 대세가 정권 교체라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모두 정권 교체를 최우선으로 내세운 윤, 안 두 후보가 끝까지 따로 출마한다면 정권 교체가 아니라 그 반대로 정권 유지를 돕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통합 공동 정부 운영의 의지를 밝힌 윤 후보의 결단과 정권 교체를 위해 후보직을 사퇴한 안 후보의 용단 모두가 순리에 따른 것이라 할 수 있다. 만약 윤 후보가 승리해 정권 교체가 이뤄진다면 두 사람이 국민 앞에 약속한 통합 공동 정부의 정신을 지켜 갈라지고 쪼개진 국민을 통합하고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아 국정을 정상화해야 한다. 그것이 정권 교체를 바라는 유권자들의 뜻이다.
육지도
[이기홍 칼럼]산술적 결합 넘는 화학적 결합이 관건
https://www.donga.com/news/Opinion/article/all/20220303/112146995/1
이기홍 대기자


정권교체 명분 뚜렷한 尹-安 단일화
진정성 지키면 상호 부족점 보완 효과 클 것
이젠 與野 시대정신 명료히 대비되는 구도
매표용 화장발 속 인성·이념 실체 직시해야

이기홍 대기자“자민련분들 보면 무조건 먼저 인사하고 고개 숙이세요.”

1997년 11월 초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대통령 후보가 국민회의 당직자들을 불러 모았다. 대선을 한 달여 앞두고 DJP 연합을 성사시킨 직후였다. 국민회의 사람들이 지지율 3%에 불과한 자민련을 얕잡아 보는 듯한 언행을 할 경우 단일화 효과가 반감될 것이란 우려에서 겸손 또 겸손을 지시한 것이다.

그 DJP 연합을 비롯해 2002년의 노무현-정몽준 등 대부분의 단일화는 이념·정책방향이 이질적인 세력들의 선거 공학적 결합이었다.

그런 점에서 어제 새벽의 윤석열-안철수 단일화는 상대적으로 가장 명분이 뚜렷한 단일화로 평가될 것이다.

두 사람은 문재인 정권의 불의·실정에 대한 심판과 무너진 대의민주주의 복구라는 대의를 공통적으로 추구해왔다. 게다가 보수와 중도의 결합은 대선이 아니어도 한국 정치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요구돼온 과제였다.

서로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는 효과도 예상되는 결합이다. 사실 윤 후보 지지자 중에는 투표함에 표를 넣으면서도 꺼림칙한 기분을 떨치지 못했을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문 정권에 분노한 사람들이 윤석열을 불러내 일관되게 지지해 왔지만, 국정경험이 없는 데다 측근논란, 부인과 처가 논란 등을 보며 내심 불안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안철수의 합류는 안정감을 보강하는 데 큰 효과를 낼 것이다. 그의 개혁지향적 중도 성향은 국민의힘의 낡은 기득권세력 이미지를 덜어내 줄 것이다. 무속에 휘둘리는 청와대, 부인전횡 등 여당이 집요하게 가공해온 상상도(圖)도 힘을 잃게 됐다.

정치력과 포용력 테스트에서 일단 득점을 한 윤 후보에게 이제 더 중요한 것은 이번 결합을 화학적 결합으로 한 단계 높이는 것이다. 국민의힘 사람들이 지지율 7%, 의석수 3석에 불과한 정치인을 껴안은 것이라 여긴다면 큰 착각이다. 안철수 개인이 아니라, 안철수 지지로 표상되는, 도덕적으로 문제없고 통합 지향적인 정치를 기대하는 많은 국민을 끌어안기로 한 것이다.

부동층과 안철수 지지자들은 국민의힘이 얼마나 진실되게 행동하는지를 냉철하게 지켜볼 것이다. 겸손한 자세로 단일화를 보수정당의 환골탈태, 부패 기득권 정당 이미지 탈피의 계기로 삼아야한다. 명실상부하게 공동정부를 이루겠다는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선거 열흘을 앞두고 다당제 연동형비례제 개헌 등 미끼를 던지며 ‘반윤연대’에 매달렸던 여당은 윤-안 단일화를 막기 위해 혈안이 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호남 출신인 안 후보 부인과 끈이 닿을 학연 지연까지 동원해 접근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안철수는 명분과 원칙, 가치를 택함으로써 행정능력·국정능력을 입증해 보일 기회의 문 앞에 다가섰다.

선거 코앞에 무대에 급조해 올린 여당의 집단 변신 연극은 뻘쭘해지게 됐다. 얕은수는 결국 자충수가 됨을 보여준다. 여당이 4년10개월간 자신들이 찍어온 족적을 아무리 부랴부랴 부정하고 반성해봤자 거기에 진정성을 느낄 만큼 국민이 어수룩하지 않다.

이제 대선은 ‘민주정부 4기 출범’ vs ‘정권교체’라는 양측의 시대정신이 명확히 대비되는 구도가 됐다. 후보들의 인성과 이념적 실체를 직시할 때다. 미국의 성공한 역대 대통령 10명의 전기를 쓴 작가들이 공통적으로 뽑은 가장 중요한 대통령의 자질은 품성(Character above all)이었다.

후보를 떠받치는 세력들, 즉 집권할 경우 어떤 세력이 득세하게 될지도 내다봐야 한다. 대선은 대통령 한 명만 뽑는 게 아니다. 거대한 두 그룹의 새(鳥)떼 가운데 어느 그룹에 논을 내주느냐의 선택이다.

정권 재창출에 성공할 경우 추미애 등 문 정권 내내 득세했던 인물들이 검찰장악·사법훼손 등의 비행이 면죄부를 받은 듯 활개치고, 더 거친 좌파 인사들이 5년을 다지기(콘크리트 타설) 기간으로 삼으려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만약 정권교체에 성공한 이후 윤 후보와 부인 주변에 몰려든 파리떼들, 검찰주의자들, 보수 몰락을 자초한 옛 기득권 부패인사들이 방앗간에 득실대는 상황이 펼쳐지면 국민은 더 크게 분노할 것이다.

국민은 5년 전 투표의 결과로 민생과 상식이 무너지고, 냉전시대의 굳은 머리로 대한민국 흠집내기에 몰두해온 좌파 인사들의 세상이 열리는 현상을 목도했다. 워치독 기관들이 오랫동안 지켜온 기본 원칙과 질서가 무너지고, 외교는 신뢰와 자존심 모두 잃었다. 법치의 근간인 절차적 정당성, 견제와 균형은 5공 이래 가장 밑바닥 수준까지 떨어졌다.

우리는 어린 시절 거짓이 진실을 이길 수 없다고 배운다. 불의가 정의를 이길 수 없다고 배운다. 그런 믿음은 보통사람들의 평생 삶과 공동체를 지탱하는 바탕이 된다.

그러나 살다보면 그 믿음은 수시로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필자 세대의 삶에서 역사적·사회적 차원에서 그 믿음이 시험대에 올랐던 것은 전두환 군부독재 시절이었고, 결국 믿음이 승리했다. 그 후 35년 가까이 지난 지금 그 믿음은 다시 거대한 시험대에 올랐다. 이번 대선은 그런 선거다.

이기홍 대기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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