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지도
https://www.chosun.com/opinion/editorial/2022/09/09/APCH5HS545BDXNYRHVCNICIEBE/
[사설] 7조 한국 투자 낚아챈 美장관, 우리에겐 이런 장관 있나
조선일보
입력 2022.09.09 03:16 | 수정 2022.09.09 03:28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이 한국 투자를 검토하던 대만 반도체 기업을 집요하게 설득해 미국으로 투자를 유치해간 사실이 외신을 통해 뒤늦게 알려졌다. 세계 3위 웨이퍼 제조업체인 대만 기업 글로벌 웨이퍼스는 올 2월 50억 달러(약 7조원) 규모의 독일 투자 계획이 무산되자 한국을 투자처로 검토했다고 한다. 미국 상무부가 투자 유치전에 나섰고 지난 6월 러몬도 장관이 글로벌 웨이퍼스 최고경영자와 직접 1시간 통화하면서 설득했다. 한국의 공장 건설 비용이 미국의 3분의 1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러몬도 장관은 “계산을 맞춰보자”며 획기적 지원을 약속했다고 한다. 장관과 통화하고 2주 후, 글로벌 웨이퍼스는 텍사스주에 일자리 1500개를 창출하는 50억달러의 신규 공장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이 보도를 보면서 우리에겐 이런 장관이 있느냐는 자문을 해보게 된다.
각국 정부는 세제 및 인프라를 지원하면서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구축하고 대통령과 장관이 앞장서서 투자 유치전에 나서고 있다. 질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나라 경제를 키우기 위한 경쟁은 그야말로 총성 없는 전쟁이나 다름없다. 미국, 프랑스 등이 특히 적극적이다. 아일랜드의 경우 브렉시트로 영국을 떠나는 글로벌 금융사 유치에 발 빠르게 나서서 135개 글로벌 금융기관의 유럽 본부를 유치했다.
우리 경우 기업의 해외 투자가 증가하면서 외국 투자의 국내 유입보다 해외 유출이 더 많은 투자 역조 현상이 2014년부터 본격화됐다. 문재인 정부는 투자 역조를 되돌리려는 노력을 하기보다는 한국 기업의 해외 이전을 가속화했다. 지난해 투자 역조 규모가 사상 최대치인 807억달러에 달한다. 2014년 이후 7년 만에 5배 늘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외국인 직접 투자 유치액은 G20 국가 가운데 17위로, 우리보다 외국인 직접 투자가 적었던 나라는 튀르키예(터키), 이탈리아, 아르헨티나 3국뿐이었다. 올 들어서도 이런 추세는 바뀌지 않고 있다. 올 상반기에 유입된 외국인 직접 투자는 작년보다 15% 넘게 감소해 110억달러다. 반면 우리 기업들의 해외 투자는 올 1분기에 벌써 그 2배도 넘는 254억달러에 달한다.
한국을 기업 하기 좋은 나라로 만들기 위해 대대적으로 규제를 풀고 대통령과 장관이 적극적으로 투자 유치에 나서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올 기회조차 다른 나라에 눈 뜨고 빼앗기는 일이 또 벌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