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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北, 군인 식량배급 축소…주민들엔 “애국米 내라” 2, 3일마다 독촉
입력2023.02.15. 오전 3:02 수정2023.02.15. 오전 8:39 기사원문
신진우 기자
고도예 기자
北, 군인 식량배급 축소… “2000년대 들어 처음”
1인당 하루 곡물 지급 620g→580g
정부소식통 “北 식량난 극심한듯”
북한이 군인 1인당 하루 곡물 배급량을 기존 620g에서 580g으로 최근 감량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 고위 소식통은 14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북한이 군에 지급하는 공식 배급량을 줄인 건 2000년대 들어 처음”이라면서 “우선 배급 대상인 군의 식량까지 줄인 건 북한의 식량난이 심각한 상황 이상이란 의미”라고 밝혔다. 북한 주요 도시에서는 주민들을 상대로 군량미 비축 등 명목으로 2, 3일에 한 번씩 ‘애국미(米)’를 내라고 독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당국은 복수의 대북 첩보 등을 분석한 결과, 북한이 군 곡물 배급량을 이같이 줄인 정황을 파악했다. 북한은 통상 주민 1인당 하루 평균 곡물 배급량을 500g 중·후반대로 잡고 있다. 군인 1인당 배급량이 580g이 됐다는 건 배급 순위표 최상단에 있는 군도 일반 주민 수준으로 배급량이 줄었음을 의미한다. 북한의 식량 배급 체계는 1∼9등급(등급이 높을수록 배급량이 많음)으로 분류되는데 통상 군인은 3등급 안에는 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 농업 전문가인 권태진 GS&J 이코노미스트는 “군의 배급량을 줄였을 정도면 북한이 통상 100만 t 이상 비축해두는 전시 대비 군량미도 바닥 수준일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정부의 다른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이 지난해 실시한 군사훈련도 2021년과 비교해 10∼20% 감소했다고 한다. 북한은 에너지난을 이유로 공군 야간훈련 등은 거의 못하는 실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군인 식량배급 축소
우선배급 대상 軍, 축소 이례적
“대도시서도 굶어죽는 주민 속출”
정부, 軍동요-탈북 사태 등 주시
“북한 주요 도시에서도 굶어 죽는 주민들이 속출하고 있다. 대량 탈북 사태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정부가)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정부 고위 소식통은 14일 북한의 심각한 식량난을 언급하며 이같이 말했다. 이 소식통은 주민들의 이탈을 우려한 북한 당국이 ‘고육지책’으로 군인 1인당 배급하는 곡물량을 줄였다고 분석했다. 소식통은 “북한 사회에선 군인에게 주는 식량만큼은 손대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다”면서 “이번 (군 배급 감량) 조치가 북한군 내부 동요로 이어질 가능성도 주목하고 있다”고 밝혔다. 군인들 배급량을 줄일 정도로 식량난이 심각해진 만큼 북한 주민들의 불만이 방치할 수 없는 수준으로 커졌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젊은 군인들 먹기에 크게 부족”
북한군의 연간 식량 소비량은 20만∼30만 t 수준으로 추정된다. 일반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군인들에게 지급되는 곡물도 대부분 쌀과 옥수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감량돼 배급되는 1인당 580g 곡물량은 언뜻 보면 적지 않아 보이지만 전문가들의 견해는 달랐다. 한 외교 소식통은 “북한 식사에선 곡물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다”면서 “대체로 젊고 건장한 군인들이 먹기엔 크게 부족한 양”이라고 강조했다. 북한 농업전문가인 권태진 GS&J 이코노미스트는 “양도 양이지만 군인에게 배급되는 공식 배급량이 줄었다는 것 자체가 상징적인 사건”이라며 “북한 주민들에게 주는 충격이 작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군 공식 배급량이 줄었다는 건 변방 지역 등에서 근무하는 군이나 군 가족 등의 사정은 더욱 열악해졌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란 분석도 나온다. 정부 소식통은 “하급 군인이나 변방 지역, 주요 부대에서 근무하지 않는 군인들의 경우 하루에 300g도 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할 것”이라고 했다. 북한 전문매체 데일리NK는 지난해 북한 내부 군 소식통을 인용해 “총참모부 지휘부 식량 공급소가 9·9절(북한 정권 수립일)을 맞아 밀렸던 8, 9월 두 달분 군관 본인 배급은 줬지만, 가족 배급은 주지 않았다”면서 “군관 가족들이 불안해하는 상태”라고 전했다. 북한의 식량난이 북한군 핵심인 총참모부 지휘부 가족에게까지 파고들었다는 것이다.
●“北 식량난 위기에 이달 전원회의”
북한은 1973년부터 주민들에게 지급하는 곡물의 12%를 전쟁 비축미 명목으로 뺐다. 1987년부터는 군량미 등 명목으로 ‘애국미’라는 이름을 붙여 감량한 뒤 배급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식량난에 시달리면서도 군인들의 ‘밥’만큼은 꼬박꼬박 챙겨 줬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에서 평양 특파원을 지낸 문성희 도쿄대 박사는 “예로부터 북한에선 모든 주민들이 굶는다고 해도 군대만은 식량을 넉넉히 보장하고 있었다”고 말했다고 10일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이 보도했다. 문 박사는 또 “부모들이 자기 아이를 군대에 보내고 싶은 이유 중 하나가 그래도 자식들은 군대에 가면 굶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이랬던 북한이 최근 군인 배급량을 줄일 정도로 식량 부족 사태에 직면한 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가 결정타였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한파 등 기상 문제, 북한 당국의 잘못된 식량 정책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식량 부족이 악화되고 있는 것으로 정부 당국은 보고 있다.
북한은 이달 하순 농업 문제를 단일 안건으로 상정해 전원회의를 열기로 했다. 통상 매년 1∼2차례 당 전원회의를 개최해 온 사실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경우다. 정부는 이번 전원회의 개최가 식량난에 대한 북한 당국의 위기감 때문이란 첩보도 입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고도예 기자 ye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