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지도
[선데이 칼럼] 외교성과 세일즈포인트는 ‘국민 설득’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58868
중앙선데이
입력 2023.04.29 00:28
지난 26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한·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윤석열 대통령은 미국 측의 뜨거운 환대를 받았고 양측 간에 중요한 합의들이 이루어졌다.
가장 다급한 북핵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핵협의그룹이라는 상설협의체를 설치해 미국의 핵무기 운용에 대한 정보 공유와 기획에 한국 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했다. 특히 전략핵잠수함(SSBN)의 한반도 전개 확대를 합의했고 항공모함 등 미국의 전략자산을 ‘정기적으로 아주 자주’ 한국에 전개하여 미국의 대북억제 보장 의지를 한국 국민들이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북한이 핵을 사용하면 “북한 레짐의 종말”이 될 것이라며 이례적으로 강하게 경고했다. 그러나 한국인들의 불안감을 가라앉히려는 미국 측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들 일부는 미흡함을 느낄 수 있다. 결국 핵협의그룹이 얼마나 한국 측의 의사를 반영하면서 구체적으로 내실 있게 운용될 것이냐가 중요하게 되었다.
한·미 정상회담 대체로 성공적 평가
국민에게 외교 성과 세일 잘하려면
왜 정당한 것인지 제대로 설득해야
국민 안심시킬 소통전략 쇄신 필요
한국의 재래식 전력을 한·미 간의 군사전략 기획에 효율적으로 통합하도록 노력한다는 합의도 이루어졌다. 이는 미국 국방부의 통합억제(Integrated Deterrence) 군사전략 프레임워크에 한국을 좀 더 긴밀히 품어 안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입장에서도 대북 방어능력을 강화하는 긍정적 조치로 보인다. 또한 그동안 북한의 사이버 불법 해킹으로 대북제재 효과가 약화되는데 대한 대응책이 미흡해 보였다. 이번에 정보 공유를 포함해 사이버안보 기술, 정책, 전략에서 협력하겠다고 합의한 것은 조금 늦었지만 잘된 일이다.
‘차세대핵심신흥기술대화’를 신설해 반도체와 배터리, 바이오, 디지털 경제, 퀀텀 등의 첨단기술 분야에서 협력하기로 한 것도 큰 의미가 있다. 대통령실과 백악관이 직접 컨트롤하며 챙기겠다고 한다. 한·미 동맹을 이제 기술동맹으로까지 발전시켜 우리의 첨단기술능력을 강화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반도체과학법의 시행과정에서 한국의 반도체, 자동차 기업들에게 부과된 부담을 어떻게 경감할 것이냐가 과제로 남아 있다.
대체적으로 성공적 회담이었다. 그런데 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 행정부가 자신의 정책이나 외교적 성과를 효과적으로 세일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10이라는 외교적 성과도 세일을 잘하면 15로, 못하면 5로 비친다. 국민들에게 세일을 잘하려면 지금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고 그러한 상황에서 정부가 선택한 정책이 왜 정당한 것인지 제대로 설득해야 한다.
5~6년 전만 해도 아무도 국제정치가 이처럼 급전직하할지 몰랐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에서 친러반군을 동원해 문제를 야기하고 있었지만 우크라이나를 통째로 삼키려 들지는 않았다. 한반도에서는 평창올림픽 외교로 비핵화와 평화에 대한 희망이 넘쳤다.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으로 미국 정치, 외교에서 이상기류가 감지되었지만, 아직 대중국 포용정책을 전면 폐기하지는 않았다. 그랬기에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균형 외교’와 ‘안미경중(安美經中)’이라는 모호한 전략을 밀고 갈 외교적 공간이, 좁지만 그나마 있었다. 그러나 이런 모든 것들이 까마득한 옛날이야기가 돼 버렸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수십 년간 금기였던 핵사용을 위협하고 있으며, 전쟁은 내년 말까지도 갈 수 있다. 에너지난, 곡물난, 공급망 문제가 겹치고 세계적 경기침체가 진행되고 있다. 전쟁에서 러시아가 승리하면 지난 70년간 한국 경제와 민주주의 발전을 받쳐 줬던 규범기반(rules-based) 국제질서는 깨지고 힘이 곧 정의인 세상으로 서서히 진입할 것이다. 북한은 소형핵탄두를 드론을 비롯한 각종 미사일에 장착해 남측을 초토화할 수 있다며 선제적 핵사용을 협박한다. 최근 하버드대에서 열린 회의에서 전문가들은 북한이 영국이나 프랑스처럼 200~300기 수준의 핵무기 보유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 상황인데도 중국은 한국의 자위를 위한 사드 배치에 대해 경제제재로 압박했고 한·미 동맹을 약화시키려 하고 있다. 미국 내에서는 초당적인 중국 때리기 경쟁이 벌어지고 있고, 시진핑 주석은 임기 내에 대만통일을 공언하면서 미·중 대결은 갈수록 격화되고 있다. 현재 미·중 간에는 군사 대화가 전혀 없다. 그래서 언제든지 우발적 사고가 통제 불가능한 전쟁 상태로 확산될 수 있다.
이처럼 위태로운 상황에서 한국은 안보와 경제 모두에서 미국과 중국 중 어느 한쪽을 선택하도록 강요받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한·미 동맹 강화, 한·일 관계 개선, 글로벌중추국가를 추진하되 중국과의 호혜관계 유지라는 외교 노선을 택했다. 그렇다면 그 선택이 다른 선택보다 왜 나은지를 설득해야 한다. 즉 미국보다 중국을 선택해서 한·미 동맹과 한·일 관계가 틀어지고, 서방 진영에서 고립되면서 그동안 친서방 정책으로 거두어 왔던 실리들을 잃게 되는, 그런 와중에 핵 무장한 북한을 한반도의 대표주자로 모시고 살아가야 할 선택보다 왜 나은지 국민들에게 설명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대국민 설득 작업이 미진하다 보니 한국의 제로섬적 정치문화 속에서 국가의 외교전략에 대한 진지하고 심도 깊은 건설적 토론은 사라지고 지엽적인 문제로 정쟁만 난무한다. 답답해하는 국민들을 안심시킬 소통전략의 큰 쇄신이 필요하다.
윤영관 서울대 명예교수·전 외교통상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