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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플라자] 행시 준비하는 SKY 친구들도 킬러문제는 쩔쩔매더라
입력2023.07.20. 오전 3:03 기사원문
수능 국어 영역 모의고사를 잘 내기로 유명한 사설 업체가 있었다. ‘이감 연구소’가 그곳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문제의 질이 높은지 물어보자, 학생 한 명이 답하더라. “출제했던 교수들이 모여서 문제를 내는데 질이 나쁘면 이상하죠.” 과열된 수능 사교육 시장은 교수들이 모의고사를 출제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출제 위원을 지낸 은퇴 교수들이 학원에서 일하는 것 자체는 문제라 할 수 없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 교수들이 가진 인맥 등을 매개로, 현재 문제를 출제하는 출제 위원과 교감이 이루어졌던 것 아닌가 하는 부분이다. 수사 등으로 밝혀질 일이겠지만 만약 그러했다면, 그건 이권 카르텔에 불과하다. 그러나 수능 모의고사 출제 업체에 불과한 ‘이감 연구소’가 병역 특례 기관으로 지정되어 있었던 데서 보듯, 권력과 결탁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면 이해하기 어려운 결과가 드러나는 것 같기도 하다.
민간 모의고사를 교수들이 출제하게 된 즈음, 신기하게 수학능력시험의 국어 영역 문제는 점점 어려워졌다. 변별력을 갖추기 위함이라고 하기 과할 정도로 말이다. 서울대, 연대, 고대 등 상위권 대학을 나와 5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22년 수능 ‘헤겔 문제’ 등 소위 국어 킬러 문제를 풀게 했을 때 정답률이 어떠했을 것 같은가? 50%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과연 이 문제들이 ‘대학에서 수학할 능력’을 테스트한다는 시험 목적에 적합한 문제였을까?
2018년 수능 국어에서는 ‘가능 세계’를 소재로 한 문제가 나왔는데, 이 개념은 공부를 곧잘 했다는 대학생들에게 20분 넘게 설명해야 이해시킬 수 있다. 결국 이런 난도의 문제는 정석적 풀이가 아닌 요령에 기반해야만 풀 수 있게 되고, 그 요령을 가르치는 공간에 사교육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가 너무 어렵기 때문에 학생들은 고교 사교육을 넘어 PSAT(공직 적격성 검사, 5급 공채 1차 시험)나 LEET(법학 적성 시험) 강의를 찾아 들었다. 관련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라면 수능이 무언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최근 킬러 문항을 수능에서 배제하고, 출제 과정에 이권 카르텔이 있는지를 살피라고 했던 것은 이런 배경 때문으로 이해된다. 맥락 없이 나온 지시가 아니라 권한 있는 누군가가, 한번은 짚고 넘어가야 했던 문제다.
다만, 이번 수능 정상화 지시가 공론화되는 과정에서는 문제도 많았다. 대표적인 것이 ‘비문학을 수능에서 배제하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한 몇몇 언론의 보도였다. 국어 영역은 크게 ‘문학’과 ‘비문학’으로 나뉜다. ‘비문학’ 전체를 수능에서 배제하라는 것은 교과과정의 절반을 부정하는 것이다. ‘비문학’ 중 킬러 문항을 제거하라는 것과는 궤가 다르다. 그러나 초기에 이런 보도가 이어졌고, 이에 대한 대통령실 등의 공식적 수정도 없었다. 수험생들과 학부모들은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와서 살펴보면 정책 목표는 비합리적인 킬러 문항 제거, 그리고 출제 과정의 문제 여부를 점검하는 것이었음을 생각해 볼 때, 몇 언론의 잘못된 표현 사용과 그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 없었던 것은 아쉽다.
수능이 과열된 근본 원인도 생각해볼 문제다. 이는 의대 치대 한의대 등 소위 ‘메디컬 직업’ 선호 과열과 직결되어 있다. 수능을 ‘메디컬 고시’라고 칭하면서 4수, 5수를 당연하게 여기고, 초등학생 때부터 학원 의대반 수강을 당연시한다. 이를 지탱하는 비합리적 사회 보상 구조부터 바뀌어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수능이 일부 수정된다고 해도 사교육비를 줄이기는 어렵다. 당장 수능에서 킬러 문제가 제거된다고 하니, 대치동 대입 컨설팅과 논술 분야의 수입이 늘 거라는 말로 이어지니 말이다.
#신재민 전 기재부 사무관